▲ 이충호 안전보건공단 서울지역본부 본부장

히브리어로 일(avoda)이라는 단어는 노예(eved)와 어원이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일을 한다. 설사 생계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천성적으로 일을 해야만 한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며, 천성에 의해 일을 하지만 의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일을 하면 자유로울 수 있다.
이러한 행복한 노동에서 자유를 얻는 근로자가 산업화와 더불어 점점 줄어들고 과거 1차산업 중심의 경제에서 3차산업의 비중이 확대되면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중 하나가 감정노동자의 탄생이다. 과거 육체노동이 주를 이루었다면 IT산업의 발달로 정신노동이 발전하다가 최근에는 서비스업이 발달하며 감정노동으로까지 근로형태가 변화했다. 인권의식에 상대적으로 일찍 눈을 뜬 서양에서는 8, 90년대부터 감정노동 문제가 대두되었지만 우리의 경우 불과 몇 년 전부터다.
최근 컵라면 상무와 항공기 승무원 사건을 계기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청소년 알바들의 인권침해와 스트레스 문제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아파트 경비원 및 전화상담원 자살 사건 등이 불거지면서 그만큼 사회적 비용 손실도 크게 늘고 있다.
감정을 숨기고 억누른 채 회사나 조직의 입장에 따라 말투나 표정 몸짓 등을 연기하는 일이 수반되는 노동이 감정노동이다. 서비스업 종사자가 늘어나면서 감정노동자라는 말이 일반화 되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감정노동자는 800만~1,000만명에 이른다.
감정노동 강도가 높은 직업으로는 항공기 승무원, 백화점 판매원, 식당 종업원, 콜센터 상담원 등이지만 우리사회에 뿌리깊은 갑을문화를 감안하면 거의 모든 사회인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감정노동을 별도의 일감으로 떠안고 근무하고 있다. 서비스업이 발달한 근로형태에서 고객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서비스의 결과가 좌우되므로 고객의 감정상태를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에서 감정노동 종사자 2,652명을 대상으로 감정노동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약간의 우울증 이상을 보인 경우가 58.3%로 나타났으나 감정노동 관련 교육을 실시하는 사업장은 전체의 27.5%에 그쳤다. 고객과 문제 발생 시 시말서 제출, 임금삭감, 공개 사과 등의 벌칙을 받은 경우도 30% 가까이에 이르고 CCTV, 녹음 등을 통해 고객친절에 대한 수시 감시를 받고 있음이 드러났다.
때맞춰 국회에서 관심을 가지고 감정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법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정부에서도 언론 및 기업 등과 공동으로 기업주의 인식 개선을 촉구하는 한편 사회적 분위기 확산에 노력하고 있다. 감정노동에 학식과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감정노동 종사자 서포터즈를 만들어 맞춤형 컨설팅 및 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다양한 감정노동 종사자에 대한 관리 지원방안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감정노동 문제를 다른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다뤄야 할 필요성도 있어 보인다. 감정노동을 하나의 독립된 노동으로 인정하여 노동자와 고객이 떳떳하게 노동력을 주고 받는 형태로 바꿔 가는 것이다. 육체노동, 정신노동과 더불어 감정노동을 제3의 근로형태로 독립시키고 이에 상응한 인식과 처우는 물론 문화로 정착시키는 사회 공동의 노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백화점 판매원이 보이는 미소는 친철 자체가 하나의 업무이고 노동으로 고객은 인식하고 판매원 스스로는 업무와 지신을 분리하여 감정을 표현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직업을 존중하는 사회 문화적 분위기 성숙이 중요하다. 감정노동에 대한 범 국민적인 공감대 형성을 통한 일반 국민의 인식전환을 위한 꾸준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감정노동 문제가 우리보다 일찍 대두된 서양의 경우 법, 제도에 의존하기 보다 사회적 인식변화를 통해 해결해 가고 있는 것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