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경안전환경연구원 문형남 원장

1. 우리의 안전의식은 몇 점?
큰 사고가 나면 우리 언론이 가장 쉽게 표제로 사용하는 말이 ‘사고왕국’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바로 ‘안전불감증’이다. 그리고 사고의 원인으로 사용하는 말이 ‘또 인재(人災)’이다.
이런 용어를 나열해놓고 보면 우리나라 사고는 거의 대부분 ‘사람 탓’ 즉, 우리 자신이 잘 하면 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우리의 안전의식이 낮아서, 안전에 대한 관심이나 사고예방 준비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몇 년 전인가 대한상공회의소가 우리나라 근로자 10인 이상이 일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경영관리자와 근로자의 안전의식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경영관리자의 안전의식은 5점 만점에 1.86점, 속된 말로 낙제점수이다. 그리고 근로자의 안전의식은 2.21 그것도 재수를 해야 하는 수준이다.

2. ‘안전 불감증’의 현실, 대피훈련도 이벤트로
작년 2014년은 유달리 대형 사고가 많았던 해로 우리는 기억하고 우리 사회가 안전사고 방지에 그 어느 해보다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한 해이다.
사고사망자 수에서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보다 적지만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많은 어린 학생들이 사망한 것에 쇼크를 받아 우리 사회 전체가 안전사고의 두려움을 절감하게 되었고, 그 반향으로 언론마다 안전사고에 많은 지면과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안전사고 예방에 큰 이정표를 세운 한 해였다.
정부도 행정조직체제도 보완하고, 안전사고로 인한 인명손실을 최대한 줄여야하겠다고 종전보다 강도 높게 화재 대피훈련을 지도하고 있는데, 그 현장을 보면 어떠한가…
2014년 5월 13일 서울 강남의 최고층인 코엑스 무역센터와 아셈타워에서 전 층을 대상으로 대규모 화재 대피훈련이 실시됐다.
실전을 방불케 연막탄도 터뜨리고 화재 안내방송과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직원들이 안내요원의 안내를 받아 비상계단으로 대피한 것이다.
하지만 빌딩 안에 있던 직원들 가운데 4분의 1만 화재 대피 훈련에 참가해 안전 불감증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두 빌딩을 합쳐 9,000여 명의 직원 가운데 2,380명(26.4%)만 대피에 나섰고 대부분 하급 젊은 직원들이었고, 상당수는 불이 났다는 안내방송에도 그냥 사무실에 눌러 앉아 업무를 봤다.
훈련에 참여한 사람들의 태도를 보아도 진지하게 코와 입을 가리고 대피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나오는 사람, 일부는 옆 사람과 키득거리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터덜터덜 걷는 사람, 심지어 훈련 상황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까지도…
1년에 22회 정도 자체 소방훈련을 해 왔다는데도 이런 미미한 참여와 한심한 모습이라니… 더구나 사회지도층이나 고위관리자들의 안전무관심이 이 정도라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3. ‘안전 무지증’
192명이나 사망한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의 발단은 한 50대 남성의 이상한 행동이었다. 그가 객차 안에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붙이는 시늉을 하며 머뭇거릴 때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한 승객은 없었다. 대부분 당황해서 라이터 불을 켜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때만 해도 열차와 불꽃의 결합이 어떤 참상을 초래할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2005년 1월 서울지하철 7호선 열차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때는 승객들의 반응이 사뭇 달랐다. 대구지하철 사고의 교육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한 남성이 라이터로 광고 전단에 불을 붙이자 승객들이 소리를 지르며 옆 칸으로 대피했다. 승객들은 즉각 기관사에게 신고했고 다음 정거장에서 역무원들이 투입돼 불을 껐다.
대구지하철 화재 당시 승객들이 방화 기도에 소극적으로 반응했던 건 위험에 둔감해서라기보다 위험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안전 불감증’을 탓하지만 안전 심리 전문가들은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안전 무지증(無知症)’이 더 본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전문가는 “진화론적으로 인간은 위험을 망각하기보다 회피하려는 본능이 강하다. 산업화와 기상이변 등으로 눈에 띄지 않는 위험이 급격히 늘었는데 이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경고 시스템이 취약해 위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내 기상관측 사상 가장 강력했던 태풍 매미, 2003년 9월 제주지역을 강타했을 때 최대순간 풍속은 초당 60m에 달했다. 전국에서 숨지거나 실종된 131명 가운데 바람이 가장 셌던 제주는 사망자가 2명에 불과했다. 오히려 풍속이 제주의 절반 정도였던 영남지역에서 104명이 숨졌다.
이는 제주는 태풍의 공포를 잘 알고 있어서 시설물 건축이나 관리를 엄격히 하고, 주민들도 신속하고 엄중하게 대피하기 때문이다.
2014년 2월 부산외국어대 학생 등 10명이 사망한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건물 붕괴사고도, 하중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 건물 지붕에 50cm의 눈이 쌓였는데도 치우지 않고 행사를 진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이곳은 폭설의 위험을 잘 몰라서 사고위험을 간과한 것이다.
어떤 위험이 올지 뻔히 알고도 방심한다는 경우보다 뭐가 어떻게 위험한지 잘 모르거나,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두려움도 빨리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대개 경험해보지 않은 위험에 대해선 사고가 날 확률을 과소평가하고 예상되는 피해에 대해서 구체적인 지식이 없어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안전심리학 전문가는 “안전 예방대책은 일반인들이 일상행위에 내재된 위험을 잘 모른다는 전제에서 시작돼야 한다”며 “항공기 조종사나 승무원이 특수훈련을 받듯이 시민들도 위험의 실체를 몸으로 익힐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