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충호 안전보건공단 서울지역본부 본부장

며칠 전 한 조간신문에 ‘예전엔 왜 우리만 안전점검?...이젠 우리도 안전점검’이란 타이틀의 기사가 실렸다. 인간의 탐욕과 잘못된 교육이 만들어 낸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사회의 안전의식이 달라지고 있는 현장을 취재한 기사이다.
설렁설렁 시간만 때우던 재난대비 훈련이 실전처럼 바뀌고 “왜 우리에게만 난리냐”던 불만 섞인 민원도 사그라지고 있다고 한다. 비상구를 가로막고 있던 물건들도 자발적으로 깨끗이 치우고 귀찮게만 여기던 안전점검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고등학교 기말고사 수행평가를 위한 자유발표시간에는 발표자 절반의 테마가 안전이었고 소방방재청 표준매뉴얼까지 정리해 발표소재로 사용하고 있다는 기사다.
그런데 그 기사 바로 하단에는 ‘그래도 버틴다... 안전 불감증에 빠진 업주들’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돈벌이에 눈이 먼 일부 사업주들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는 내용이다.
해방이후 압축 성장으로 대변되는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안전불감증이 하루아침에 개선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사회지도층이나 기업의 경영진이 바뀌지 않는 한 안전문제 해결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근로자가 희생된 산업현장만 보아도 그렇다. 근로자에게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사람은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이며, 일터의 안전보건에 관한 책임은 전적으로 사업주에게 있다.
최근에 대형 산업재해가 발생한 모 사업장은 감독기관의 작업중지 명령으로 장기간 공장가동을 못하고 특별감독은 물론 전문기관의 안전진단을 받아 개선계획을 제출해야 하는 등 어마어마한 규제 이행으로 경영상 수백 억 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반면에 어떤 사업장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건의 산업재해도 발생하지 않아 보험료 감면혜택과 정기감독 면제라는 인센티브를 누리고 이직, 노사분규, 품질 문제를 걱정하지 않고 사업한다.
두 기업 간 차이가 무엇인가? 전자의 사업장은 안전관리 실패로 법령에 의한 외부통제와 사후 안전관리를 강요받고 있는 반면, 후자의 사업장은 자율적이고 사전적인 강한 내부통제를 통해 산업재해예방은 물론 품질, 생산 등이 좋아진 예이다.
사업주 스스로 안전보건전문가를 고용하고 엄격한 내부 안전기준을 만들어 지키고 자율적으로 작업공정에 잠재된 위험성을 찾아 위험도를 평가해 개선해 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위험성평가다. 위험성평가가 시스템으로 정착되어 성과가 나는 사업장에 안전보건공단에서는 안전보건경영시스템(KOSHA 18001) 인증을 해주고 있다.
위험성평가시스템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사업주가 효율성, 이윤, 시장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안전에 관한 강한 의지와 방침을 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속적인 실행을 지원할 자체감사와 같은 통제절차가 필요하다. 위험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기업의 사업주는 산업재해나 사고발생으로 산업재해예방을 위해 투입되는 금액의 수 십 배에 달하는 경영손실을 감수해야 하고 원치 않는 외부 통제(규제)에서 탈피하기 어렵다.
시스템에 의한 자율안전관리가 감독기관의 법적통제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업주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업주들은 아직도 감독기관의 강제적이고 사후적인 법적 규제에 불편함을 토로하면서도 자율적인 안전관리 통제시스템을 갖추는데 소극적이다. 경영자가 외부 간섭의 불합리성만 보고 도덕적 의무감의 내면화와 실행의지가 소멸된 가치관에 대하여 애써 외면하려는 생각에 기인한 결과이다. 자율안전관리는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