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충호 안전보건공단 서울지역본부 본부장

몇 년 전 30여 명의 근로자가 일하는 중소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다. 현장 점검 중 근로자 휴게실에 ‘인재(人財), Safety first’라고 적힌 사훈을 봤다. 人材(인재)라는 한자표기가 잘못된 것인가라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기업 대표는 “우리 회사는 사람이 재산입니다“라는 말로 내가 품고 있던 의구심을 해결해 줬다.
매출이나 생산성, 품질 그 어느 것도 직원의 건강과 생명보다 우선할 수 없으며, 기업경영에서 안전은 가장 소중한 가치라는 것이다. 그런 탓일까 이 회사는 산업재해, 이직, 노사갈등 등 중소기업이 흔히 겪고 있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매년 약 20% 이상씩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 저명한 원로 한분의 언론 인터뷰를 본적이 있다. 그분은 최근 대형사고의 원인을 이렇게 지적했다. 사고의 근인(近因)은 인간의 탐욕이고 원인(遠因)은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총론적으로 정확한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산업현장에서 연간 발생하는 9만 여 건 산업재해의 근인과 원인은 다를까? 결론부터 말하면 다르지 않다.
근인(近因)으로 진단한 인간의 탐욕은 안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아직도 많은 경영자는 안전보건을 경영에 있어 가치보다는 우선순위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 안전에 대한 투자가 재해로 인한 손실비용보다 훨씬 적게 들어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러니 안전에 대한 투자를 비용으로 인식해 투자를 기피하고 재해가 나지 않고 생산량만을 늘릴 수 있는 요행을 바라게 된다.
근로자는 안전이 자신의 일할 권리를 보장해 주는 최후의 보루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근로자 스스로 위험을 인지하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자기 일터의 안전을 확보하기 보다는 설마하는 안이한 마음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관리감독자는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거나 무관심하다. 안전에 대한 전문성도 부족하다.
때문에 근로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사업주의 안전에 대한 의지를 보좌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결론적으로 현장에서 안전시스템이 작동되지 않고 있다.
원인(遠因)으로 진단된 교육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문가들은 산업재해의 80% 이상이 불안전 행동에 기인하다고 한다. 낮은 안전의식과 정착되지 않은 안전문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법으로 정한 각종 안전보건교육을 시키지 않고 방기해서 그렇다고 보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

오히려 산업인력이 사회에 첫발을 내 딛기 전이 문제다. 가정과 학교에서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지 못한 젊은이들이 일터에 들어와 성인교육을 통해 인식을 바로 잡으려 하니 그 성과가 미미하고 더딘 것이다.
듀폰에서 개발한 브래들리 커브(Dupont Bradley Curve)에 의하면 안전수준이 낮은 단계에서는 무의식적 행동 수준의 안전이 유지된다. 다음 단계에서는 통제(Enforcement)에 의해 안전이 유지되고, 점차 수준이 높아질수록 시스템에 의한 안전단계를 거쳐 안전문화가 기반이 된 자율안전이 정착된다고 한다.
이 커브에서 각 단계별로 안전관리 수준을 높여 가는 수단은 사업주, 관리감독자, 안전관리자, 근로자 등 기업의 각 주체별 안전의식과 전문역량이다.

사업주가 안전보건을 경영의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고 기업을 운영하게 되면 관리감독자와 안전관리자의 전문역량 강화 필요성을 실감하게 되고 근로자를 참여시킬 소통과 동기부여 대책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것이 자율안전의 기반이 된다. 결과적으로 안전이 생산과 품질향상을 이끈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속가능한 기업의 중요한 요소로 윤리성, 창의성, 혁신성과 더불어 안전보건을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