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충호 안전보건공단 서울지역본부 본부장

얼마 전 서울 왕십리역에서 열차 간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세월호 사고로 그동안 안전을 철저히 챙기지 못한 아픔과 통렬한 반성이 국민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시점에 다시 대형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 국민 중에 안전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말과 행동이 달랐던 측면이 있었음을 생각할 때 최근 대형사고를 계기로 안전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그 무렵 서울에서 한 개의 지하철 노선을 운영하고 있는 다른 외국계 회사의 안전관리실태를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종합 운행통제상황, 안전관리 조직, 경영진의 안전 마인드 등에 관심을 가지고 스웨덴 출신 CEO를 만났다. 그가 생각하는 간결하고 명확한 안전에 관한 메시지와 안전관리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대형사고 발생원인이 오버랩되면서 작은 전율을 느꼈다.
그는 “기업이 고객의 신뢰를 얻는 최고의 정책이 안전”이라고 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단순화하고(Simplify) 통합적이고(Integrated) 전문화(Specialized)된 안전경영시스템을 구축 운영한다고 했다.
우선, CEO 직속으로 안전보건관리부서를 편재하고 부서장을 10년이 넘는 기관사와 정비 등에 경험을 갖춘 철도교통 전문가로 임용하고 있다. 그리고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존중해 한번도 보직을 바꾸지 않았고 사고 등 비상 발생 시 모든 부서는 안전관리부서장의 통제에 따르도록 시스템화 하고 있었다.
또한, 지하철 역사에 근무하는 역무원 등 지하철 운행과 영업관리업무에 종사하는 직원을 모두 이공계 학과 전공자로 채용해 일정기간 훈련을 이수토록 한 후 배치했다. 즉, 모든 역무 종사원이 사고 발생 시 초기 비상조치 및 대응이 가능하도록 했다. 열차 운행 중 사고가 발생할 경우 승객 대피나 화재진압 등 초기대응의 중요성을 생각해 실행한 방안이다.

그리고 철도보안관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대구지하철 방화와 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선로나 역사내 이상 징후 또는 취객 등 행동이 미심적은 승객 등을 찾아내 조치하고 열차운행에 장애가 되거나 사고발생이 우려되는 위험요인을 발굴해 개선시키기 위해 열차내와 역사에 배치돼 순찰하는 것이다.
철도보안관은 유도나 태권도 유단자인 체격조건이 좋은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해 활용한다.
위험상황과 사고발생 레포팅제도 도입하고 있다. 열차 운행이나 여객수송관리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이 업무중에 발견된 위험상황이나 크고 작은 앗차사고 등은 모두 지휘계통을 통해 정해진 시간내에 보고하도록 의무화 했다. 위험요인이 사고로 직결되기 전에 사전적으로 조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한 것으로 사고발생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돼 보고누락이나 지연에 대하여는 엄한 책임을 묻는 것이 이 제도의 특징이다.
몇 가지 제시한 활동사례를 요약해 보면, 얼마나 정확하고 빨리 위험요인을 찾아내 개선하느냐가 예방의 핵심이고, 사고 발생시 피해나 사고확산을 최소화하기 위해 초기에 얼마나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대응 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전문가 중심의 일원화된 안전관리시스템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안전시스템을 다른 서울지하철노선을 운영하는 회사들이 실행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실행내용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도의 전문식견을 요하는 안전관리부서를 하위부서로 전락시켜 부서원이 일반순환전보인사에 의해 배치됨으로써 전문가가 없거나 소수의 인력으로 사고예방보다는 사고처리나 대관업무에 전념하는 경우가 많다. 대구지하철 방화사고 이후 재발방지를 위해 철도보안관제도를 벤치마킹해 도입했으나 직원을 계약직으로 채용해 배치함으로써 그 효과가 반감되어 흐지부지되고 만 경우도 있다. 역사나 열차내에서 승객의 서비스를 전담하는 직원도 대부분 본연의 업무에는 익숙하지만 안전에 대한 식견이나 사고대응 능력을 갖추고 있지는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고가 일정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지만 발생한 사고에 대하여 철저한 원인분석(Roots Cause)을 통해 시스템과 문화를 바꾸는 근원적인 개선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임시방편의 미봉책이 반복되는 한 사고는 사라지지 않는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