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충호 안전보건공단 서울지역본부 본부장

지난해는 화학물질 누출 등 잇따른 대형사고로 인해 사회적 파장이 컸던 해였다. 무엇이 문제인지 사고의 원인 찾기와 대책 마련에 어느 해보다 분주했다. 해가 바뀌면서 대형 사고는 마무리되는 듯 했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와 GS칼텍스 유조선 충돌사고로 많은 인명피해와 해상오염이 발생하면서 다시금 모두를 긴장시키고 있다.
많은 안전전문가들이 그동안 발생한 사고의 원인을 설계단계의 안전 미고려, 안전관리 소홀, 안전수칙 미준수 등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안전문화가 성숙되지 않아 발생한 인재(人災)라는 결론을 내고 있다. 크게 빗나가지 않는 답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원인을 이렇게 포괄적으로 정리하고 나면 해결방법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안전문화가 하루아침에 성숙되기도 어렵고, 불가항력적인 자연재난이 아닌 이상 사고는 모두 예방 가능한 것으로 인재임에 틀림없으니 새삼스러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5년 전 IMF 외환위기를 겪었다. 국가부도 상황에 직면하면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은 구조조정을, 정부는 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특별조치법을 시행했다.
안전보건에 대한 투자를 비용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던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최우선적으로 본사의 안전보건조직을 폐지했다. 또 시설투자를 줄이고, 안전관리자는 겸직이나 대행기관 위탁으로 정리했다. 특별조치법으로 인해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 시기였다.
이 뿐 아니라 핵심 생산기술이나 부가가치가 높은 부분을 제외하고 소위 3D로 불리는 업무나 공정은 대부분 아웃소싱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해당 업무를 수행하거나 관리해야할 인력을 구조조정 했다.
그 후 15년,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안전보건에 관한 총체적 책임을 져야 할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안전보건 전략을 짜고 방침을 만들어 보좌할 조직이 없어 안전보건경영은 생각도 못한 채 기업을 경영했을 것이다. 생산 등 라인의 관리감독자는 전문 안전관리자 부재로 제대로 된 안전보건기술에 대한 지원을 받지 못해 근로자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다. 사고의 대부분이 발생하는 정비보수작업이나 아웃소싱 공정은 협력업체로 넘겨놓고 이를 관리할 부서를 없애고 자체 기술 인력을 육성하기 못해 내 사업장에서 일하는 협력업체를 관리할 역량이 부족한 안타까운 지경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경영자, 관리자, 안전보건관계자 등 계층별로 책임지고 수행해야 할 안전보건에 관한 역량 부재가 최근 발생한 대형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기업이 제대로 된 안전관리를 통해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기업경영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면 기업규모와 특성에 맞는 안전관리 조직과 전문인력이 반드시 필요하고 적정한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15년간 이를 간과한 결과 작금의 잇따른 대형사고로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게 됐다.
외환위기 발생 당시인 98년도 우리나라의 산업재해자 수는 5만1500여 명으로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그 후 재해자가 9만여 명 이상으로 증가한 후 최근 몇 년 동안 줄지 않고 정체 상태를 보이는 것도 이러한 영향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안전은 일하는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의 유지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일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일터의 환경 및 설비에 숨어 있는 위험을 인지하고 이를 사고와 연결되지 않도록 하는 일은 고도의 전문가 영역이며, 기술이다. 최근 발생한 대형사고는 기업 형편이 어렵고 불경기라는 이유로 이러한 영역을 담당할 전문가 육성을 게을리 하거나 조직을 축소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기업경영에 손실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총수가 나서 현장의 안전을 챙기고 전문가 육성과 시설개선에 투자를 늘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부에서도 만연된 안전불감증을 바로잡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각종 제도와 법령을 손질하고 있다. 비록 대형사고가 잇따르고 국민적 불안감이 커진 상황에서 만시지탄의 느낌이 없지 않으나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