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속도가 무거워지는 순간 나는 공원 벤치에 앉는다. 마치 오래된 지혜에게서  답을 구하듯 벤치에 기대어 말을 건다. 배낭여행을 하던 어린 시절, 유럽은 여러모로 나에게는 생경하였다. 이방인으로서의 불편함과 어색함이 얹어진 긴장감을 따뜻한 추억들로 녹여 내준 곳은 예상치 못한 아주 평이한 공간이었다. 바로 ‘벤치’였다. 그 당시 유럽에는 이미 시민들을 위한 공원이 잘 디자인되어 있었고 그곳을 이용하는 이들을 위한 정거장 역할을 하는 벤치는 나에게도 바게트 빵을 들고 허기를 달래고 여행으로 지친 다리를 달래주기 위한 아주 고맙고 유용한 쉼터였다. 더욱이 현지인들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대화를 통해 그들의 삶을 잠시나마 공유하던 그 순간들이 루브르 박물관이나 이탈리아 피렌체 대성당이 보여주던 미학적 가치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나의 여행 일지를 추억으로 채워주었다. 만약에 공원 안에 벤치가 아닌 개별 의자들이 간간이 놓여있었다면 나는 그런 값지고 생생한 경험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여행에서 배우고자 했던 것은 유럽 관광지가 가진 다양하고 화려한 건축물에 매료되고 고대 유적을 통해 그들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더 유럽 곳곳에 살고 있는 이웃들의 일상이 궁금했던 젊은 날이었다.감사하게도 그 호기심과 의문의 대부분을 벤치에서 답을 얻어 다음 여정으로 가볍게 이동할 수 있었다. 
벤치와 의자는 힐링의 공간, 사색의 공간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치는 의자와 차별되는 고유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연결성이다. 잘 살펴보면 벤치가 밀접한 곳은 바로 종교시설이다. 아마 교회당이나 성당에서 작은 공간에 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한 효율성에 집중을 한 디자인으로 벤치가 필요했을 것이고 벤치가 가진 연결성으로 인해 나란히 앉아 같은 곳을 향하고 있는 공간에 서로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연결되었다는 인식이 신앙의 단단한 토대가 되었다고 본다. 그 연결성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거실에 있는 1인 소파와 3인 소파의 역할을 비교하면 그 연결성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벤치는 의자가 가진 ‘걸터앉는 데 쓰는 기구’라는 물리학적 역할을 넘어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한 허브로서 개인을 넘어 공동체로 향한 접근성을 돕고 있다. 거리 확보가 중요해지면서 더욱 고립된 생활 형태가 늘어난 이 시기에 벤치는 우리에게 세상 풍경과 어우러지라고 손짓을 하며 초대한다. 벤치는이렇듯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품을 내준다. 작가에게는 사색의 장으로 자전거를 타는 스무 살 청년에게는 잠시 쉬어 가는 쉼터로, 오랜만에 외출하신 어르신에게는 세상의 풍경과 소통하는 창구로서 그 자리를 내준다. 
벤치는 누군가에게는 성찰과 사유의 공간으로 충분한 역할을 하고 누군가에게는  사교의 공간을 제공하고 누군가에게는 온전한 휴식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근로자들에게 ‘벤치’라는 이 작은 공간은 동료들과 대화를 촉진하고 관계를 더욱 향상시킬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며 일로 인한 긴장을 완화하기도 하고 피로도 회복하는 그 순간을 제공할 수 있다. 물론 주변환경에 푸른 나무들과 아름다운 꽃들이 함께하고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까지 더한다면 좋겠지만 산업 현장 안팎으로 놓인 벤치만으로도 근로자들에게는 참았던 날숨을 쏟아 낼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산업현장에서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고려해야 할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벤치와 같은 휴게 공간이기에 근로자들의 방전되는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도록 그런 공간들이 산업현장의 일부로서 역할을 다 하도록 디자인돼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정류장, 공원 그리고 산업현장에서 목격된 벤치들은 디자인과 기능 면에서도 다양하고 훌륭했다. 친환경 소재, 재활용 소재를 활용하기도 했고 개인 공간을 구별하는 좌석의 형태로 벤치를 만들어 상호 간의 공간적 밀접함이 주는 불편함을 최소화이기도 했고 열선을 넣어 난방을 더한 벤치로까지 진화하여 도시의 생태와 잘 호흡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어떤 모습이건, 모든 벤치들은 한 목소리를 낸다. 벤치는 우리에게 ‘당신을 잠시 내려놓아도 좋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삶의 속도를 줄이고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바라보자고 손짓한다. 오늘도 나는 셀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남긴 ‘그루터기’와 같은 사랑을 벤치라는 벗에게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