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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9  16: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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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효 부장 대림산업 안전보건팀(한국건설안전학회 전기안전기술위원장)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표출되는 일들이 많다. 택시 앞에서 분노하고, 119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도 분노하고, 부도덕한 갑질에 사회 전체가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만연하고 있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의 뿌리는 무엇일까?

널리 통용되고 있는 매슬로우(Abraham H. Maslow)의 인간 욕구 발달 5단계 이론은 인간의 욕구를 단계별로 구분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생존의 욕구가 달성되어야 그다음 단계인 안전의 욕구가 발현되어 평상심과 질서를 추구하게 된다.

안전의 욕구가 달성되면 다음 단계인 애정과 소속의 욕구가 발현되어 사회적 상호관계를 추구한다. 애정과 소속의 욕구가 충족될 때 그 다음 단계인 존경의 욕구가 발현되어 타인에게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기를 추구하게 된다. 존경의 욕구가 충족된 다음에 욕구 발달의 최종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가 발현되어 궁극적으로 자신의 완성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가장 원초적 욕구인 생존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두려움을 느낀다. 삶을 지속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평상심을 흩트리고 분노를 유발한다. 그 분노는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대상들과 싸워서 살아남기 위한 투지를 만들어 내도록 생존의 욕구에 내재되어 있는 감정이다.

인간은 생존이 위협받을 때 두려움에 빠지고, 그 두려움이 분노를 낳고 분노가 투지를 만들어 생존을 지향한다. 삶의 안정적 기반이 불안한 현실에서 두려운 사람들이 주체할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을 곳곳에서 뿜어내고 있다.

그 분노의 본질은 생존을 지향하는 것이지만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극단적인 형태의 분노는 상대방을 해치고 궁극적으로 자신을 해치게 된다. 가장 극단적인 분노의 표출 형태가 자살이고,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13년째 자살률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분노를 어떻게 다뤄서 삶을 지향하는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을까?

‘복싱은 자신을 통제하는 스포츠다.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 강력한 펀치와 방어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두려움’을 이해하고 다룰 줄 아는 것이다. ‘두려움’은 불과 같다. 불은 겨울에 온기를 주고 배고플 때 음식을 조리해준다.

어둠을 밝힐 수 있는 빛과 에너지를 만들지만 통제하지 못하는 불은 우리를 해친다. 비범한 사람들, 뛰어난 사람들, 챔피언 벨트를 오랫동안 보유하는 사람들은 불과 같은 ‘두려움’을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극강의 세계 챔피언들을 길러냈던 전설적인 복싱 코치 ‘커스 다마토’의 말이다. 커스 다마토는 ‘두려움’에서 나오는 분노와 투지를 통제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강조했던 것이다.

며칠 전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겪었던 일이다. 비가 많이 내렸고 지하철 내부 환기가 원활치 않아 눅눅하고 습한 날이었다. 상당히 이른 아침 시간임에도 지하철 안은 이미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그 날 따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에 탑승하면서 지하철 내부가 금방 사람들로 가득 찼다.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대부분 피곤하고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른 시간에 밀집하게 운집한 사람들을 보면서 삶이 참 팍팍하고 피곤하다는 두려운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분주하게 출근하는 저 많은 사람들이 어디선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해주기 때문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이겠구나….”

그 생각이 들자 그 이른 시간에 덜컹대는 지하철 속에서 서로 부대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의 마음이 느껴졌다. 삶에 대한 두려움이 분노와 투지의 감정으로 변하기 전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일본에서 50여 년을 변호사로 일한 한 노(老) 변호사가 자신에게 변호를 의뢰했던 1만여 명의 삶을 지켜본 경험을 토대로 ‘운을 읽은 변호사’라는 책을 펴냈다. 그 책에서 노 변호사는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수백만 명의 도움을 받은 덕분이라는 것을 일깨워줬다.

우리가 먹는 식사 한 끼도 씨앗을 만드는 사람들, 그 씨앗을 심어 키우는 농부들, 농업을 지원하는 수많은 사람들, 수확하는 사람들, 산지에서 우리가 있는 곳까지 운송해주는 사람들, 식재료를 조리하여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 등 무수한 사람들의 손을 거쳐 우리 앞에 놓인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온 세상 모든 곳에서 먹고, 자고, 입고, 살아가는 모든 일에서… 우리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존재들의 배려에 의해 내가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건설 현장에서 빈발하고 있는 재해 또한 분노와 무관하지 않다. 근로자들이 의식주를 유지하는 원초적 생존 욕구에서 불안을 느끼면 그 다음 단계의 욕구인 안전을 무시하게 된다. 생존의 불안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그 두려움이 분노로 표출되어 평정심을 잃게 되고 무모한 행동을 유발하여 자신과 주변을 해치는 안전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건설 현장 또한 관련된 무수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일하는 장소이고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모든 일을 진행하고 있는 공간이다. 이 세상은 상대방을 해쳐야 내가 살 수 있는 전쟁터가 아니고 저마다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곳이다. 사람 ‘인(人)’이라는 글자의 모양처럼 사람은 서로를 지탱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직업의 불안정성이 높은 건설현장에서 근로자들이 매 순간 이같은 사실을 자각할 수 있다면, 생존의 욕구에서 표출되는 분노로 인해 평정심을 잃지 않고 오히려 분노를 다루는 통제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의 본질을 알고 분노를 다룰 수 있게 된다면 두려움과 분노가 생산적인 투지로 발현되어 건설 현장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재해를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잘나고 똑똑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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