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재난안전칼럼] 되돌아 본 한강종합개발
김진영 방재관리연구센터 이사장  |  safetyin@safety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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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9  15: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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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영 기업재난안전협회 회장 방재관리연구센터 이사장
88서울올림픽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한강종합개발사업’이 1982년 9월 28일 여의도 둔치에서 기공식과 함께 첫 삽을 떴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로 인해 오염된 한강을 종합적·다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정비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1986년 9월까지 5년에 걸쳐 소요된 총사업비가 9560억 원에 이른다. 연인원 420만 명이 동원됐고, 장비만도 백만대 이상이 투입된 대규모 공사였다.

1981년 9월 30일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제84차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총회가 열렸다. 1988년 제24회 하계올림픽 개최지를 놓고 경합을 벌이는 순간이었다. IOC위원들의 투표결과는 초반 열세를 극복하고 52 대 27이라는 큰 표 차로 일본의 나고야를 물리치고  ‘서울시’가 선정됐다. 세계가 깜짝 놀란 대 이변이었다.
한밤중 잠도 잊은 채 “쎄울”이라는 소리에 세상이 떠나갈듯 한 함성이 터졌다. 투표결과가 나올 때까지 서울이 승리할 걸로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바덴바덴의 기적이었다. 당시 국내분위기는 어수선할 때다. 80년 5월의 ‘서울의 봄’은 차갑기만 했고, 광주에선 꽃다운 청춘들이 스러지거나 무더기로 끌려가던 시기다.

어찌됐든 ‘서울’올림픽 유치는 세계 스포츠계를 충격에 빠트린 일대 사건이었다. 88올림픽을 대비한 테스크포스가 구성되는가 하면 각 부처별로 정책발굴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을 찾아오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발전상을 과시하기 위한 플랜이 타 사업보다 우선시됐다. 그 일환으로 건설부(현 국토교통부)는 아름다운 한강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한강종합개발계획'을 추진하게 됐다.

본인이 주무부서인 하천계획과에 근무할 때다. 대한민국 5대 엔지니어링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몇 날 며칠 머리를 맞대어 마련한 것이다. 당시 한강은 생활하수와 공단폐수의 유입으로 악취가 진동하고 한강 곳곳에 쓰레기더미와  크고 작은 진흙더미가 쌓여 잡초가 무성했다. 지하철 2호선 공사가 막 착공되어 출·퇴근 시간이면 교통체증으로 서울 전역은 몸살을 앓았다. 이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한강 36km구간을 대대적으로 손 댄 것이다. 사행성 물줄기는 곧게 펴졌다. 양 제방에는 올림픽대로 등 강변도로를 개설했고, 둔치에는 시민공원이 조성됐다. 저수로는 하천유지수량을 확보해 가뭄에도 강바닥이 드러나지 않아 한강의 본래 기능과 역할을 되찾았다.

오늘날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그런데 한강종합개발사업이 한창이던 1984년 8월 서울, 경기, 충청지역 최악의 홍수사태가 발생했다. 한강이 위험수위인 10.5m를 넘었고, 초·중·고에 대학까지 휴교령이 내릴 정도였다. 사망자만도 200 여명으로 집계됐다. 이를 본 북한은 적십자사를 통해 쌀, 천, 시멘트, 기타의약품등 수재의연품을 보낸다고 제의해 왔다.

당시 남북 간 정치적 분위기는 골이 깊었으나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전두환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앞두고 한반도 평화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구호물자는 인천항, 북평항, 판문점을 통해 받기로 하고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항만을 통한 시멘트는 받아들이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판문점은 절대 불가능했다. 인수기지를 새로이 조성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총리실 주관으로 TF팀을 구성하고, 사무실을 남산에 위치한 ‘대한적십자사’로 정했다.

본인도 ‘북적지원물자인수단’에 파견돼 판문점 인수기지를 조성하는데 역할을 수행했다. 한강종합개발사업이 한창 진행되는 시점과 맞물렸다. 운송장비는 물론 모래, 자갈 등 자재확보에 큰 어려움 없이 준공시켜 북적물자를 성공리에 인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북한 쌀은 수해지역주민에게 구호품으로 전달됐는데 냄새나고 묵은 쌀이라는 불평도 있었지만 실향민들은 향수에 젖기도 했다. 다행히 이듬해인 1985년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한강종합개발사업이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 효자노릇을 한 것이다.

총 예산 9,560억 원이 투입된 한강종합개발 사업은 1986년 9월 10일 완공됐다. 한강의 수질개선을 위해 우리나라 최초로 54.6km 구간에 빗물과 오폐수를 분리시키는 대형 분류하수관로가 설치되었고, 중랑천, 안양천, 홍제천, 탄천에는 하수처리장이 건설됐다. 한강주변 시설물의 안전을 위해 한강본류와 지류의 수위를 유지시키기 위한 수중보(신곡수중보, 잠실수중보)도 설치됐다. 한강변 둔치에는 체육공원이 만들어졌고, 지하보도와 자동차 진입로가 설치됐다. 한강의 남쪽연안으로는 김포공항에서 올림픽경기장을 잇는 올림픽대로가 건설됐다. 한강종합개발사업은 오늘날 4대강종합개발사업의 모델이 되었고 세계 각국으로 수출을 하기에 이르렀다.

서울시의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백서’에 나온 글을 인용해 본다. “올림픽 때 서울을 찾은 대부분의 외국인들의 공통된 서울에 대한 인상이 매우 깨끗하다, 꽃이 많고 아름답다, 한강이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라는 것이었으며 서울은 티끌하나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라는 격찬이 나오기까지 하였다.”

한강 모래백사장을 끼고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낭만은 사진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한강의 옛 모습이 됐다. 수도 서울을 관통하며 여전히 흐르고 있는 ‘민족의 젖줄‘이라 불리는 한강도 완전히 바뀐 것이다.

그간 하천구역에는 홍수 때 흐름에 방해가 되는 시설들은 설치나 식재할 엄두도 못 내던 때였다. 나무는 물론 고가도로, 자전거도로, 체육시설, 가설물, 수변공원 등 어느 것 하나 설치할 수 없었다. 하천부지를 점용하는 경작도 금지했었다. 매년 하천관리실태를 점검하는 기성제심사를 나갈 때면 하천제방과 고수부지(홍수때만 잠기는 하천부지)에 나무 한그루도 허용하지 않았었다.

한강종합개발사업이 그간 고집해 왔던 하천유지관리기준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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