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양수 본부장 SK이노베이션 SHE본부

무더웠던 지난 8월 어느 날 외부 회의에 참석하고 택시를 타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민방위의 날 민방공훈련 공습경보가 발령되어 차 안에서 15분간 대기한 적이 있었다. 과거에 매달 15일이면 실시하던 민방위의 날 훈련이 어쩐지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방위의 날 훈련 횟수는 수 차례 변경되어 지금은 민방공훈련이 연 2회, 방제훈련은 연 4회 실시되고 있다고 한다. 차 안에서 대기하는 15분은 참 지루한 시간이었으나 이런 생각을 해보는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비상대응시스템은 왜 필요하고 훈련은 왜 해야 하며 우리는 과연 얼마나 비상상황에 대비되어 있을까?”

어느 분이 일전에 “모든 사고는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이 참일까요 거짓일까요 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사고예방 체계가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다면 언젠가는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모든 사고를 예상하고 완벽하게 예방체계를 갖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므로 이 표현은 사고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Safety Principle 정도로 이해해야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사고에 대해서 어떻게 미리 준비하여 피해를 최소화 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를 영원히 잊지 못한다. 초동 대응만 잘 이루어졌다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는 단순한 방화사건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사고를 비상대응시스템의 부재와 관련 기관과 인력들의 미흡한 비상대응능력으로 인해 192명이라는 인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만약 비상대응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교육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졌었다면 결과는 어떻게 변했을까? 소중한 192명의 목숨을 지킬 수도 있었을 이 사고는 철저한 비상대응시스템의 구축과 운용만이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이다.
지진에 대한 경각심이 철저한 훈련을 통해 일상에 베어 있는 일본을 보면 시민은 물론 어린 학생들까지도 지진발생 시 행동수칙 매뉴얼 정도는 공공 지식으로 알고 있다고 하며 심지어는 응급처치술까지도 정기적으로 익히고 있다고 한다. 비록 2011년 최대규모의 지진발생과 쓰나미에 의해 2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으나 그들의 침착한 대응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것을 넘어 경악케 하였다. 과연 이런 규모의 재해가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필자는 석유화학공장에 30년을 몸 담는 동안 사업장에서의 많은 사고사례를 직접 겪어보고 들어왔다. 비상대응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하던 시절에는 사고가 나면 공장 근무자들이 모두 사고현장으로 달려 나가 우왕좌왕하던 적도 있었고 소방용수가 부족해 화재현장에 제대로 물을 살포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으며 바다에 기름이 누출되었으나 초기에 대응하지 못해 누출된 기름을 회수하기 위해 엄청난 인력이 동원된 적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전 구성원이 일치 단결해 공장을 지키고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했기에 대부분 무난히 마무리 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지금은 거의 모든 사업장 또는 기관에서 비상대응시스템을 갖추고 주기적으로 비상훈련도 실시하고 있기에 과거와 같은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으나 언제 발생할 지 모르는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비하여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하겠으며 지속적으로 시스템을 개선,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비상대응시스템은 어떻게 구축해야 하며 훈련되어야 하는 지 국내 우수기업의 사례들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먼저 사업장에서 취급하는 화학물질 및 공정에 대한 위험성을 고려하여 이에 맞는 비상대응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올해 4월 15명의 사망자와 200여명의 부상자를 낸 미국 텍사스 비료공장의 화재폭발사고를 예로 들면 물과 접촉하면 폭발하는 무수 암모니아가 누출된 상황에서 화재 진압을 위해 물을 뿌려 2차 폭발이 발생함으로써 피해가 확산되었다고 추정되고 있으며 이 사고는 아직도 미국 CSA(Chemical Safety Board)에서 정확한 원인을 조사 중에 있다.

비상대응시스템에 포함되어야 하는 주요 요소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먼저 비상대응을 위한 조직체계가 갖추어져야 하고 각 조직의 역할과 책임이 명확히 규명되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비상대응을 위한 절차가 갖추어져야 하며 절차에는 화재폭발, 독성가스 누출, 오일누출, 태풍/폭우, 지진, 정전 등 사고유형에 따라 신고, 초기대응, 작업중단, 경보, 비상연락 등에 대해 정의하여야 한다. 또한 발생 가능한 모든 비상상황에 대해 피해범위를 분석한 정량적 위험성평가 결과를 반영한 시나리오를 준비하여야 한다.

비상대응을 위한 설비도 확보하고 점검하여야 한다. 누출감지 설비, 경보설비, 소방설비, 긴급차단밸브 등 사고를 조기에 발견하고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설비들이 적절히 설치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평소에 자주 사용하지 않는 설비는 주기적으로 Test되어야 한다. 자체장비와 인력만으로 비상대응이 곤란한 경우도 있으므로 지역 소방서 등 외부와의 협조체계의 구축도 필요하다.

이렇듯 체계적인 비상대응시스템이 구축되었다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평상시 꾸준한 교육훈련을 지속적, 반복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며 훈련결과는 모든 조직과 공유하고 개선사항이 있을 경우 이를 반영하여야 한다.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 사고의 특징 및 영향을 이해하고 평상시 시나리오에 따라 훈련한 것처럼 침착하게 대응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하고 사고를 종결 지울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여러 건의 화학물질 누출사고로 인해 화학물질관리법률이 대폭 강화되었고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앞으로 화학사고가 발생하고 중대한 과실이 있을 경우 막대한 과징금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으며 사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장외영향평가도 실시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이 신규로 제정되어 신규 또는 기존 사용 중인 화학물질에 대해 유해성 및 위해성 자료제출도 의무화되었다.

이렇게 강화되는 법적 규제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비상대응시스템이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은 분명하나 법적 의무의 이행을 떠나 그 전에 나 자신과 동료 그리고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발적인 비상대응시스템 및 훈련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안전분야에 몸 담고 있는 일인으로서 다시는 비상대응 실패로 인해 대량의 인명피해가 발생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