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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컬러 트래블치명적인 그린의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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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4.26  17: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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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이 우거지는 5월, 축복과 감사의 날로 달력이 빼곡하게 채워지는 달. 
이토록 아름다운 계절이 있을까?

I see trees of green, red roses too
I see them bloom for me and you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 ‘What a wonderful world’에 귓전에 울려 퍼지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화답하고 싶어진다. 다시 그의 노래로

“Yes,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그린’에 대한 칼럼을 쓰기 시작한 지금 당장 숲으로 가고 싶은 욕망부터 가라앉혀야 했다.

인류는 항상 좀 더 새로운 색에 매혹되어 왔고 새롭게 출시한 색명에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린’은 이 시대에서는 가장 이미지가 좋은 색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한쪽에도 기울지 않는 현재의 중심점이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지향점이 된 컬러로 공고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린의 위상이 항상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컬러는 문화코드, 기호로서 작동하기 때문에 문화 사회적 맥락에 따라 가치와 위상이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동시대, 한 국가에서도 T.P.O.(시간, 장소,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기도 한다.

특정 컬러에 대한 애호와 열광은 쉽게 타오르고 쉽게 사그라든다. 그런데 유독 그린에 대한 열정은 한 세기를 넘도록 오래 지속되었다. 어쩌면 화학이 좀 더 빠르게 발전되었더라면 인류의 그린에 대한 열정은 좀 더 오래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기술의 진보가 인류의 취향보다 늦어진 탓에 ‘그린’은 흑역사를 갖게 되었다. 이 흑역사의 서막은 스웨덴 약사, 칼 빌헬름 셸레Carl Wilhelm Scheele의 약국에서 시작되었다.

   
 

셸레는 15세부터 약사 견습생으로 시작해 독학으로 평생 화학자의 길을 걸었다. 공식적인 과학 교육을 받거나 평생 동안 과학 시험에 응시한 적은 없었다. 영국의 왕립 학회나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와 같은 당대의 명성 있는 기관들과 긴밀한 네트워킹을 하지도 않았기에 그는 과학사에서 여전히 모호한 인물로 남게 되었다.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에 선출되었지만 회의에만 한 번 참석했다고 전해진다.

일평생 그는 무수한 화학실험을 하며 7개의 새로운 원소와 많은 다른 화합물을 발견했다. 오늘날의 일상생활, 산업, 의료에 사용되는 수많은 다른 유기 화합물(산소, 염소, 청산, 주석산, 텅스텐, 몰리브덴, 글리세린, 니트로글리세린)이 한 사람의 실험을 통해 발견되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그의 발견은 무기 화학과 사진 및 열 물리학의 토대를 제공했다고 평가받는다.

1775년 그는 깊고 선명한 녹색을 발견했는데, 이 녹색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셸레 그린Scheele Green’이라고 명명했다. 산뜻하면서도 호화롭게 느껴지는 ‘셸레 그린’은 거실, 주방, 심지어 욕실까지 생명을 불어넣으면서 계층 구분 없이 모든 사람들이 탐내는 그린이 되었다. 
이전에 사용된 녹색 염료를 순식간에 시장에서 사라지게 만들 만큼 저렴했고 생산하기도 쉬웠다. 조화, 양초, 장난감, 의류, 비누, 미용 제품, 과자, 벽지, 삽화, 어린이 장난감, 우표는 물론 병원, 철도역 대기실 등 공공장소도 ‘셸레 그린’이 장악했고 그 열풍은 점점 더 거세져만 갔다. <더 타임즈>에 따르면 1863년까지 500톤에서 700톤에 이르는 셸레 그린이 영국에 생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셸레 그린’에는 독극물인 비소가 함유되어 있었다. 비소의 입자들은 건조한 상태에서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공기가 습해지면 곰팡이를 형성하여 공기 중에 다량의 비소를 배출하며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치료용으로 만들어진 비소는 약국에서 어린이부터 살인이나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까지 손쉽게 살 수 있는 저렴한 독극물이었다.

‘셸레 그린’의 대표적인 희생자는 나폴레옹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폐될 당시 자신의 방 벽지를 ‘셀레 그린’으로 장식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육지에서 약 1,200km나 떨어진 외딴섬이다. 나폴레옹에게 ‘셸레 그린’은 아마도 정화의 컬러가 아니었을까. 수많은 전쟁에서 무수한 피를 보았던 그에게 ‘그린’은 컬러 테라피로 작동했을 것이다. 연한 초록색은 흥분을 진정시키고 짙은 초록은 고요함으로 안내한다. 하지만 심리적, 정신적으로만 그랬다. 그의 방 벽지로 인한 비소 중독이 1821년 그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가설과 달리 현대 의학에서는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망 당시 그의 혈액에서 발견된 비소는 현대인의 100배가 넘는 양이라고 한다. 놀랍게도 그 당시 사람들의 보편적인 수치였을 것이라고 한다.

나폴레옹만큼 ‘셸레 그린’을 사랑했던 사람은 찰스 디킨스다. 집 전체를 ‘셸레 그린’으로 채우려고 했던 그를 아내가 말렸다고 한다.

‘셸레 그린’의 독성에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반응하지는 않았지만, ‘셸레 그린’에 노출된 다양한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병드는 사건이 매체에 실리기 시작했다. 산업 현장에서 리스 장식으로 사용된 나뭇잎과 모자, 드레스를 맨손으로 만들었던 노동자들의 피부는 참혹했다. 결국 비소의 치명적인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영국에서 1851년 개인에게 판매할 수 있는 양은 제한되었다. 하지만 산업용으로 대량 사용하는 것에는 아무런 규제가 없었다. 1840년대에 신흥 도시였던 리버풀이나 맨체스터의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평균 수명은 25세 전후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노동력 착취는 심각했던 시대다.

   
 

‘셀레 그린’이 누구에게도 안전하지 않은 치명적인 컬러라는 것이 더 이상 미신이 아니라는 것으로 인식될 무렵이던 1814년에는 ‘셀레 그린’을 대체할 컬러로 좀 더 밝은 ‘에메랄드 그린’이 출시되었다. ‘에메랄드 그린’은 성능 좋은 쥐약의 재료가 되기도 했다. 1861년 한 의사가 ‘에메랄드 그린’에서 비소의 독성을 발견해 내기 전까지는 쥐를 죽일 만큼 독성을 가진 ‘에메랄드 그린’을 의심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비소는 녹색 염료에서 완전히 퇴출되었다.

비리디안 viridian

1860년대 후반이 되자 사람들은 푸른빛을 띠는 새로운 그린 컬러, ‘비리디안viridian’에 시선을 돌렸다. '녹색'을 뜻하는 라틴어 viridis에서 유래한 색명이다. ‘비리디안’은 크롬 산화로 얻을 수 있는데, 1838년에 처음 생산에 성공했고, 여러 차례 개량을 거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비리디안으로 정착했다. 1859년 프랑스의 화학자 귀네 Vert Gignet가 공업적 제법으로 특허를 받았다. 건조가 빠를 뿐 아니라, 내수성이 좋고, 초록 계열 가운데서 가장 색상이 뛰어나므로 초보자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비리디안’ 역시 먹어서는 안 되는 중금속으로 만들어진 컬러다.

파리스 그린

19세기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폴 세잔Paul Cezanne, 르느와르 오귀스트 Auguste Renoir와 같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은 무성한 녹색 풍경에 사용할 물감으로 ‘파리스 그린 Paris Green’을 사용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세잔의 당뇨병과 모네의 실명에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었다. ‘파리스 그린’은 결국 1960년대에 와서야 금지되었다.

이처럼 ‘그린’은 대한 열망은 오래 지속되었다. 하지만 한 예술가는 ‘그린’을 아주 싫어했다.  
직선과 삼원색(빨강, 파랑, 노랑)을 주로 사용했고 ‘곡선’과 ‘그린’은 싫어했던 예술가다.  바로 네덜란드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 Piet Mondrian.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린은 쓸모없는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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